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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 구도

요점

IMF는 은행의 색채가 뚜렷해지고 세계은행은 기금의 성격이 강해졌다.

브레턴우즈 체제 이래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경제는 20세기 전반기 내내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

1980년대부터 영국, 미국, 중국, 인도에서 차례로 시장경제 사고가 주류로서 뿌리를 내림.

 

 

금본위제도

화폐 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 관계를 유지하는 본위 제도이다.

금을 직접적 화폐로 이용하였으며, 미국의 화폐를 일정량의 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교환 비율을 정하였다.

즉, 중앙은행(미국)이 통화량과 같은 금을 보유하고 있고, 돈을 가져오면 일정 비율을 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브렌턴 우즈 체제의 경우, 35달러 를 금 1온스에 교환했다.

 

금본위제도 장점

어느 국가도 인플레이션 악용할 수 없다.

물가 오름세를 이용하여 국내 재정 문제를 해결하거나 통화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금본위제도 단점

한 국가가 어떤 이유로 총수요가 감소했을 때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나 통화 공급량 증가 등의 방식으로 수요를 진작시킬 수 없다. 즉, 특정한 나라의 통화정책이 수많은 제한을 받게 돼 국제 환경과 독립적으로 국내의 고유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만약 한 국가의 금리가 다른 국가보다 낮다면 환투기꾼 들은 금리가 낮은 국가의 통화를 팔고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를 사들인 후 높은 이자 수익을 창출하려고 한다. 이른바 금리스왑(두 거래 당사자가 일정한 명목 원금에 대한 이자를 맞교환하는 것) 발생.

한 국가가 금본위제도를 선택한다면 단기자본 거래는 절대로 개방하면 안 된다.

이전 영국은 대량의 현금을 이용한 환차익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여행 시 개인당 50파운드 이내로 현금 소지를 제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결한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케인스의 예언.

"독일은 약속을 모두 이행할 수 없을 것. 평화조약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볼 수 없다. 그저 혼란과 전쟁뿐이며 결과가 빨리 나타날수록 오히려 더 좋다."

케인스의 예측대로 독일의 정치, 경제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어 히틀러 정권이 등장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조지 마셜은 마셜플랜을 발표했다.

그 후 미국은 매년 5000만 달러에 이르는 유럽에 대규모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기구의 창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창설

어떤 국가에 대한 공격은 바로 전체 국가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독일의 재무장을 억제,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후 국제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하며, 소련(공산진영)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IMF, 국제부흥 개발은행(IBRD 세계은행의 전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세계 무역기구 WTO의 전신) 출범

 

IMF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

한국 가가 자본의 불균형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출을 제공하여 외환의 단기 유동성 부족 문제 해결을 돕는다.

대출은 원조가 아니기 때문에 채무국은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해야 한다.

은행의 색채가 강하다.

 

세계은행

회원국들의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이나 빈국에 저금리로 대출해주거나 원조를 제공한다.

기금의 색채가 강하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

자유무역을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일련의 협정으로 어떤 단체나 기구가 아니었다.

1999년 WTO가 창설되면서 하나의 기구 가되 비교적 엄격한 분쟁 해결 시스템과 집행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위 기구들을 통칭하는 브레턴우즈 체제는 주요 회원국들 간에 고정환율제를 선택했다.

회원국의 통화는 기본적으로 금에 고정된 환율을 유지하였다.

브레텐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금을 대신할 수 있어 실절적인 경화(Hard currency)가 되어서 금본위제도와 차이점이 있다.

고정환율제에서 각국의 통화정책은 환율정책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선택할 수 없다.

즉, 미국이 왕이다.

 

1950~60년대의 세계경제는 브레텐 우즈 체제에서 안정적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를 황금시대라 무른다.

하지만 1970년대에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오일 가격이 4배에 가까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971년 미국은 금 비축량이 급감하면서 달러의 자유로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닉슨 쇼크)

이때부터 국가 간 환율이 자유롭게 변동되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브레턴우즈 체제의 주요 특징이 사라졌다.

 

1980년대 초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이 20퍼센트를 넘었다.

FRB(연방준비이사회, 미국의 중앙은행)는 신속히 금리를 인상해 유동성을 줄이는 방법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통신 비용과 운송 비용이 지난 50년 동안 크게 낮아졌다.

50년 동안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빠르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는 정부의 힘이 강화되면서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해 경제발전이 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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